258년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를 피해 카톨릭 신자들이 유해를 미시로 보존하기도 하고, 생활도 했던 곳이다.

당시 신자들은 예수처럼 돌을 파서 만든 지하무덤에 묻히길 원했으며 사실상 빈민 노예들이 많아 돈이 많이 드는 지상 영묘를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하에 이렇게 대규모의 공동묘지가 생기가 됐다고 한다.
그 당시 로마법은 묘지는 신성한 곳이라 여겨 함부로 침범할 수 없었기 때문에 로마군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 복잡한 미로를 만들고 성당을 마련해 종교의식도 했다고 한다.

이 까따꼼베는 12Km, 깊이 400m라고 설명을 들었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 잘못 들어가면 길을 잃을 위험이 많다고 조심하라고 했다.

(촬영지 : 이탈리아. 싼 깔리스또 까따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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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가족묘다. 큰 것은 어른, 작은 것은 어린이의 묘라나....
② 오래전에 이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유물들이다.
③ 통로가 모두 묘지다. 옆을 보면 보이는 것들이 모두 '묘'다..
④ 싼 칼리스토 까따꼼베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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